"암과의 전쟁 50년…체험으로 이겨낼 방법 터득했지요"
매일경제 | 입력 2010.02.02 15:09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전라
"나는 50년 동안 암과 싸워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떤 조건에서 암에 승리할 수 있는지를 체험으로 터득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그동안 체득한 방법과 의학적 지식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옳을 것입니다."
서울대병원 부원장, 김영삼 전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고창순 박사는 25세 때 대장암, 50세 때 십이지장암, 65세 때 간암 선고를 받았다. 그의 인생 전체를 암과의 싸움에 바쳤다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암 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몇 차례 대수술을 받은 후, 그는 사람이 최소한의 장기만으로 얼마나 잘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인간'이 되었다.
"일본 쇼와대학 인턴으로 근무하던 1957년. 서울대병원 부원장직에서 물러나던 1982년, 그리고 서울대병원을 정년퇴임하던 1997년 세 번의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끈질긴 암은 여러 번 재발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을 원망하거나 내 운명에 좌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웃으면서 살아야지요."
고창순 박사는 암 선고를 받을 때마다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암 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에도 담당의사에게 "눈에 보이는 암세포만 잘 제거해라. 나중에 재발하는 건 내가 면역력을 강화해 이겨내겠다"고 말할 정도 였다.
그는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지금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매일 자택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한 시간씩 걷고 집에서도 수시로 스트레칭을 한다. 아령은 물론 집에 있는 각종 방망이 등은 모두 그의 운동기구다. 그는 "적을 이겨 본 사람들에겐 싸움에서 이기는 나름대로의 전략과 본능이 있다"고 말한다.
"암이 지나가자 5년 전 파킨슨병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종일 몸이 무겁고 손이 떨리는 것은 물론 껌을 씹지 않으면 입이 말라 말을 하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평범한 뒷산 같은 '범산'이 되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범산'은 고창순 박사가 직접 지은 그의 호(號)다. 말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평범한 뒷산처럼 욕심 없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다.
암과의 투쟁에서 늘 승리한 그였지만 파킨슨병이 찾아왔을 때 그는 '기가 죽는다'는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평생 파킨슨병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그 약이 몸을 기운없게 만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는 욕심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다. "욕심을 채우면 배가 무거워져 침몰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가벼워지면 좋은 항구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마치 암과 파킨슨병 모두를 초월한 듯 보였다.
"요즘 의과대학은 '기술자로서의 의사'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 따뜻한 의사'를 만드는 인성교육이라고 봅니다. 후배들이 인간애를 실천하는 의사가 되도록 격려하고 돕는 것이 제 남은 소임입니다."
인터뷰 내내 편안함을 잃지 않던 고창순 박사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의학의 '의(醫)'자는 원래 돕는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말인데 요즘 의사들은 인류 행복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환자는 원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환자 처지에서 생각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진료 철칙.
수십 년 진료를 하면서 고창순 박사는 평생 환자와 한 번도 말다툼한 일이 없었다.
고 박사는 정년퇴임 후 제자 양성에 힘써 왔다. 제자를 만나고 그들의 연구를 격려하면서 그는 암과 파킨슨병에서 비롯된 모든 노곤함을 잊고 커다란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굴곡 많은 삶의 발자취 속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희망과 웃음이 남아 있었다.
[이상미 MK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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