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이야기

'싸구려 커피'로 3관왕에 오른 장기하 ....

써미트 2009. 3. 31. 18:53

'싸구려 커피'로 3관왕에 오른 장기하

기사입력 2009-03-31 16:54 |최종수정 2009-03-31 17:50 기사원문보기
장기하는 홍대 인디음악계를 넘어어 대중음악계를 놀라게 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보컬 겸 리더다. 1982년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그룹 ‘눈뜨고 코베인’ 드러머이자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 겸 싱어송라이터다.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노래 부문, 최우수 록 노래 부문,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남자 부문을 수상하며 3관왕에 오른 젊고 기발한 음악인을 여성조선 4월호가 만났다.

처음 장기하는 인터넷 동영상 파일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EBS의 무료 공연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은 이은미, 이승환, 김조한 등 방송 무대보다 콘서트 무대를 위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대거 출연해 수준을 인정 받고 있는 프로그램인데, 2008년 ‘9월의 루키’ 코너에 장기하와 얼굴들이 소개되었던 것. 반응은 가히 뜨거웠고, 장기하의 이름과 음악은 산불처럼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꽃보다 남자’에 열광하다가 TV를 끄는 순간 내 집과 애인, 통장 잔고를 떠올리며 고개를 떨어뜨리던 이들이 ‘싸구려 커피’의 노랫말 앞에서는 ‘너(노랫말 화자)보다는 내가 좀 낫다’ 싶은 생각을 하며 눈높이를 맞춘다.

‘바퀴벌레 한 마리 슥 지나가는, 눅눅한 비닐장판 깔린 방에서 축축한 이불을 덮고 쓰린 속을 미지근한 싸구려 커피로 달랜다’고 하니 너무 적나라해 할 말이 없으면서 남 일 대하듯 키득키득 웃지만, 실은 내 일 같기도 하다.

1집 앨범의 전곡을 직접 쓰고 지은 장기하. 그의 노래는 음률보다 노랫말이 먼저 들린다. ‘산울림’과 ‘송골매’의 노랫말처럼 솔직 담백함과 응축된 단순함이 묻어난다. 장기하는 우리말의 맛깔을 제대로 살려내는 재주가 있다. 반복되는 흉내음, 노랫말에 쓰인 적 없는 일상적인 용어의 등장, 말로 전하는 것 같은 구어체 형식 등은 듣는 귀를 번쩍 뜨이게 한다. 가사가 시의 한 자락임을, 장기하는 오랜만에 일깨워준다.

그는 실제로 노랫말을 중요시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다. 자신의 밴드를 ‘가사가 장점인 밴드’라 하고, ‘운율을 살리면서 우리말에 가장 적합한 가사를 쓴다’고 밝힌다. 그의 노랫말은 내용이 단순해서 해석의 여지가 넓다는 특징도 있다. 그래서 궁상맞은 자취생 청년의 아침 풍경을 그린 ‘싸구려 커피’는 88만 원 세대의 푸념이거나 절망적인 미래를 담은 것이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가사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 대답은 똑같아요. 듣는 입장에서 생각하는 모든 게 정답이에요. 저만의 의미는 있지만, 청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는 거니까요. 원 뜻을 말해버리면 학교 다닐 때 문학시간에 밑줄 그으며 문장의 의미 외우던 거랑 뭐가 다르겠어요?”

왼쪽부터 보컬 겸 리더 장기하, 베이스 정준엽, 드럼 김현호, 기타 이민기

 

장기하는 연인에게 고백할 때도 꿈에서나 지저귈 법한 듣기 좋은 꽃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나를 받아주오. 내 마음 헤집어 놓고’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 아름다워’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방식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라고 했던 그 옛날 송골매와 다르지 않다. 정말이지, 얼떨결에 날아온 직구는 피할 길이 없다. 

일명 ‘장기하 룩’에서는 음악가다운 면모를 느낄 수 없다. 홍대 클럽보다 서울대 캠퍼스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차림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셔츠 위에 니트, 그 위에 코듀로이 소재의 재킷을 걸치고 청바지 아래에는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여기다 뿔테 안경까지 낀 장기하는 영락없는 모범생의 전형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싱글 앨범 ‘싸구려 커피’는 수공업 소형 음반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소속사 식구들이 직접 CD에 음악 파일을 굽고 스티커를 붙였는데, 그 손길은 나날이 빨라졌다. 1만 장이라는 물량을 맞춰야 했기 때문. 인디 음악계에서 1만 장은 주류음악계 100만 장에 버금간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장기하는 영웅시 되기도 했다. ‘인디계의 서태지’라는 대중적인 수식을 달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2일에 열린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장기하는 예의 그 무표정을 버리고 울먹이고 말았다. “변변치도, 유쾌하지도 않은 노래에 상까지 줘서 감사하다”는 소감을 말하다가 그만 눈물을 보였다

“현학적인 가사를 쓴다든지 엄청난 예술가로 인정 받고 싶다든지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제 취향대로 만들 뿐이에요. 일상적인 말로 가사를 쓰고, 난해하고 위압감을 가진 음악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을 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성조선 4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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