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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까지 서울 다섯 개 산에 걸쳐 55㎞에 달하는 오산종주(일명 불수사도북)를 8시간50분만에 완주, 인월 마을회관~바래봉~정령치~성삼재~천왕봉~밤머리재~덕산까지 91㎞에 달하는 지리산 태극종주를 18시간52분만에 주파,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35㎞ 남짓 되는 지리산 종주를 5시간55분만에 주파, 한라산 성판악~백록담~관음사까지 20㎞를 2시간40분만에 걸었다면?
- ▲ 내년 중 히말라야 14개 거봉 중 한 곳을 등정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틈틈이 암벽훈련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 설악산 태극종주 중에.
- 인간이 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기록이다. 그러나 이 기록을 세운 사람이 있다. 바로 서울 관악구 난우중학 체육담당 교사인 송병연(46) 선생이다. 오산종주와 지리산 종주는 시속 6㎞, 태극종주는 시속 5㎞, 한라산 종주는 시속 7㎞에 가깝게 걸었다. 평지도 아니고 산길을 시속 5~7㎞로 간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경보선수도 잘 닦인 평지에서 시속 10㎞ 정도로 간다.
어떻게 가능할까 싶어 그를 지난 10월30일 만나 인터뷰 후 학교 주변 삼성산과 관악산에 함께 올랐다. 초입에선 조금 봐 주는가 싶더니 이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따라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숨이 바로 턱밑까지 차올랐다. 순식간에 땀범벅이 됐다. 삼성산 반쯤 지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포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갑자기 시작한 산행이라 랜턴도 준비되지 않았고, 복장도 정장한 상태였다. 신발만 부랴부랴 빌려 정장에 운동화 차림이라 다음 기회로 미뤘다.
이 길이, 관우중에서 삼성산~연주대를 거쳐 사당역으로 하산하는 이 코스가 그의 퇴근길이다. 약 12㎞에 달하는 거리다. 5년여 전부터 그는 이 길로 퇴근하기 시작했다. 매일 산에 가고 싶어 그가 개발한 길이다. 오후 4시30분 퇴근시각에 남들은 하산하지만 그는 역으로 산으로 향했다.
- ▲ ① 올 8월 서울 오산종주 중 수락산 정상에서. ② 올 10월 5시간55분 기록을 세운 지리산 종주 중에. ③ 지리산 종주 기록을 같은 산악회 회원이 체크한 초시계를 확인하고 있다.
- 처음엔 4시간여 걸렸다. 보통 사람치고는 조금 빠른 걸음에 불과했다. 매일 반복해서 하다보니 1년 뒤엔 3시간으로 단축됐다. 시간당 4㎞를 걸은 셈이다. 겨울엔 해가 빨리 넘어가 3시간 걸리는 산행도 길이 어두워져 랜턴이 필요했다. 더 줄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몇 년을 반복하니 재작년부터 2시간으로 줄었다. 요즘은 2시간 이내로 걷는다. 시간당 7~8㎞까지 줄어들었다. 겨울에 해가 짧아도 어두워지기 전에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오후 4시30분에 퇴근해서 12㎞ 산행 후 삼성동 집에 도착한 시각이 저녁 7시쯤. 한 마디로 철인이라고 하면 딱 적확할 인물이다.
그는 원래 단거리 운동선수였다. 선수생활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다. 초등 6년 때 학교에서 달리기 시합이 있었다. 고학년을 중심으로 전교생이 기록을 다퉜다. 그는 학교 대표선수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해 학교 대표선수로 뽑혔다. 여러 학교가 참가한 교육청 대회에 출전해서도 입상하는 실력을 과시했다. 혜성같이 등장한 무명의 선수였다. 육상 담당 선생과 코치들은 “저 애가 누구냐?”고 웅성거렸다.
육상 코치는 선수생활하라고 닦달했다. 일반 학생으로 중학교에 진학했다. 감독과 코치들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계속 따라왔다. 할 수 없이 중학교에 들어와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