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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친구하기] 의사들도 추천하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써미트 2009. 3. 4. 09:57

병과 친구하기] 의사들도 추천하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기사입력 2009-03-03 11:44 기사원문보기
1형 당뇨’ 30년 ‘동반’한 진철씨
운동·식사·마음  처방 곁들여 ‘미친’ 혈당 다스려
실전 정보로 책 내고 카페 열어 ‘작은손’ 큰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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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많은 의사나 한의사들이 자신들의 역할은 보조적인 데 그친다고 강조합니다. 질병 치료나 관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의지라는 것입니다.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앓는 이들에게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아르고스 출판사 진철(42) 대표는 성공적인 혈당 관리로 당뇨 환자는 물론 당뇨 관련 의사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진씨는 2006년부터 ‘작은손의 1형 당뇨 카페’(http://cafe.naver.com/dmtype1)를 운영하고 있으며 <인슐린 건강학>, <춤추는 혈당을 잡아라>, <당뇨로부터의 자유> 등 당뇨 관련 인기 서적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1형 당뇨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요.
 
진씨는 자신이 1형 당뇨 환자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형 당뇨 환자 판정을 받았습니다. 1형 당뇨는 인슐린 의존성 당뇨로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가 파괴되어 생깁니다.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당뇨라는 병 가진 ‘사람’ 없고, 혈당 수치라는 ‘숫자’만”
 
진씨가 카페를 만든 이유는 우리 사회에 1형 당뇨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입니다. 그는 한동안 인터넷 지식 검색 사이트에서 1형 당뇨 환자들이 궁금해 하는 점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다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카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카페 이름에 쓰는 ‘작은손’은 그의 닉네임입니다. ‘작은손’에 담긴 뜻을 물었더니 답 대신 두 손을 내밀어 보여줍니다. 실제 그는 손이 아주 작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은 손은 컴퓨터 자판 위에 올라가면 ‘큰 손’으로 바뀝니다. ‘작은손’에서 나온 수많은 실전 정보는 1형 당뇨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의 손길이 되고 있습니다.
 
“1형 당뇨는 혈당 수치가 춤추듯이 마구 오르내려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위험에 처하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1형 당뇨 환자들이 어떻게 혈당을 관리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드물어요.”
 
진철8 copy.jpg카페 회원들은 30년째 혈당을 잘 관리해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진씨의 존재 자체에 위로를 받고 안심합니다. 그로부터 얻은 정보는 실제 크게 도움이 됩니다. 카페에는 진씨의 조언으로 혈당 관리에 성공한 사례들이 무척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1형 당뇨를 앓고 있는 한 의사는 진씨가 쓴 책에 실린 글에서 “한 달간 입원 생활 동안 느낀 점은 병원엔 당뇨라는 병을 가진 ‘사람’은 없고, 혈당 수치라는 ‘숫자’만 둥둥 떠다닌다는 것이었다”며 진씨의 도움으로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 활기찬 삶을 살게 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진씨는 관리만 잘하면 1형 당뇨인들도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인슐린과 함께 운동, 식사, 마음 등이 혈당관리에 중요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그는 곡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식후 하고 식사 뒤에는 꼭 산책을 해 혈당을 낮춘다. 식사와 관련해 그는 칼로리를 따지기보다 가공식품을 멀리하는 게 좋다고 충고했습니다.
 
“인슐린량과 음식 조절만으로 혈당을 잡기는 힘듭니다. 사람에 따라 적합한 인슐린이 있고, 인슐린량을 줄여서 혈당을 낮출 수도 있습니다. 밤에 잠을 잘 때 찾아오는 저혈당을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있고요.”
 
진씨는 운동도 많이 합니다. 그는 요가, 등산, 자전거 등 다양한 운동을 즐깁니다. 진씨는 혈당 검사를 자주 꾸준히 하는 것은 혈당 관리의 기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루 10~20회 혈당을 검사하고 인슐린을 적절히 사용해 정상 혈당치를 늘 유지합니다. 인슐린 사용량도 3~5단위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슐린의 단위는 주사액 속에 든 인슐린의 농도를 뜻하는데 주사약 병에 80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으면 1㎖에 80단위의 인슐린이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재단’ 만들기 모금하고 캠프도 열어 상부상조
 
진씨는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1형 환자들을 보면 늘 안타깝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2005년 1형 당뇨를 앓고 있던, 혼자 사는 한 소녀가 저혈당 증세로 숨졌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1형 당뇨는 ‘죽을 병’이 아니기 때문에 관리만 잘했다면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아당뇨로도 알려진 1형 당뇨의 경우 80년대 들어 보고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의료진도 임상 경험이나 연구 자료가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당뇨 증세로 병원을 찾은 아이에게 감기라며 포도당 주사를 놓아 혈당 증가로 위험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적인 편견도 문제라고 합니다. 진씨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1형 당뇨 환자라는 이유로 합격을 취소한 사례가 있다며 자기 관리를 잘하면 보통 사람 못지않게 건강함에도 오해와 무지로 차별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얼마나 게으르면 당뇨에 걸리냐는 말을 듣고 상처받는 아이들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개설한 지 2년이 조금 지났지만 카페는 회원 수가 2천 명이 훨씬 넘고, 1만 3천여 건의 글이 올라 있을 정도로 도움을 주고받는 이들의 방문이 잦습니다. 회원 가운데는 의료인도 있고, 이름난 병원의 의사들이 권유해 회원이 된 이들도 꽤 있습니다. 카페는 환자들이 체험한 ‘임상 사례’들이 쌓이면서 1형 당뇨의 ‘위키피디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카페는 1형 당뇨인들이 상부상조하는 곳으로도 구실합니다. 회원들은 1형 당뇨에 대한 정보를 나눌 뿐 아니라 필요한 물품을 공동구매하고 먼 훗날 이뤄질 일이기는 하지만 ‘1형 당뇨 재단’을 만들기 위한 모금도 시작했습니다. 진씨는 그런 회원들을 위해 지난 1월과 지난해 6월, 1형 당뇨 청소년을 위한 캠프를 열기도 했습니다.
 
카페 회원이 늘어나자 문제도 있었습니다. 의료기기를 팔기 위해 등록해 활동하는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10여 가지의 질문에 답변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카페에는 회원 가입 승인을 기다리는 대기자만 900명이 넘습니다. 유혹도 있었습니다. 병원이나 여러 곳의 큰 기업에서 공동사업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진씨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1형 당뇨도 관리만 잘하면 여느 사람과 똑같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저의 30년 경험이 다른 환우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