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외국인 한의사 “침 한방에 인생 달라졌죠 | |
배낭여행 왔다 치료법 꽂혀 신비한 매력에 한의대 입학 “독일에선 침술도 의료보험 한국서 한의학 홀대 아쉬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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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문트 로이어씨의 ‘한의학 예찬’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한의사가 있다. “어디가 아프세요? 아~ 네. 침을 놓아야겠어요. 조금 따끔할 겁니다.” 한국말 솜씨 못지않게 환자들을 대하는 그의 손길이 능수능란하다. 환자가 서툰 한국말로 허리 통증을 호소하자마자, 그가 곧바로 진단을 내린다. “우선 허리 좀 만져볼게요. 자 어떠세요? 여기가 좀 틀어졌네요. 그리고 침도 좀 맞아야겠네요.”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의 이름은 라이문트 로이어(46). 어느덧 10년차 한의사다. 강남 오당한의원 부원장, 강남인한의원 원장을 거쳐 5년 전부터는 자생한방병원 국제진료센터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를 주로 진료한다. 중국이나 대만 출신 한의사는 여럿 있지만, 서구 출신 외국인 한의사는 그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다. 그러한 관심 덕분인지, 그의 진료실은 언제나 환자들로 붐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에서의 현재 삶이 무척이나 행복하다”며 “한의학의 우수성과 효능을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그가 한의사가 된 건 ‘우연’이 ‘필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동방’을 동경했던 그는, 애초 3개월 일정의 한국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대학을 마친 뒤 다니던 번듯한 직장에 불쑥 사표를 던지고, 1987년 가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본이나 중국이 아니라 굳이 한국이었던 건 “전혀 모르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첫번째 우연이다. 88올림픽을 치르기 전이었기에, 그뿐 아니라 유럽인들에게 ‘한국’은 생소한 나라였다. 그의 가족들이 “아프리카 어디에 있는 나라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느냐”며 한국행을 반대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또 하나의 우연은 ‘태권도’를 접한 것이다. 꼬집어 말하면 태권도 때문에 우연히 ‘침’을 맞았다. 한국의 모든 걸 배워 갈 욕심으로 그는 한국땅에 닿자마자 불교, 음식 기공 등 다양한 것을 배웠다. 태권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태권도를 갓 배울 즈음 발목을 다쳤어요. 인근 한의원에 갔죠. 한약 고유의 향기가 먼저 저를 매료시키더군요. 그리고 친절한 의사선생님이요. 아픈 곳은 발목인데, 손, 발가락, 귀 뒤 등 여러 군데 바늘만 꽂더라고요. 신기하게도 통증 없이 걸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것이 침이었어요. 그 순간 머릿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죠.”
한의학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 약초의 향기, 침과 뜸의 효능 등 한의학의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참으로 특이한 의술이에요. 병의 원인균만 죽이는 치료가 아니라, 환자 개개인의 체질과 특성에 따른 맞춤 치료를 하니까 말이죠.” 결국 한의학을 직접 배워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배낭여행을 마친 뒤 오스트리아에서 다시 한국행 짐을 쌌다. 1989년 연세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그 이듬해 강릉대 철학과에 입학해 동양철학과 한문학을 전공했다. 91년 2년의 준비기간 끝에 대구한의대(옛 경산한의대)에 입학했다. “한국말과 한문을 미리 익혔지만, 수업 듣는 게 쉽지 않았어요. 사투리를 쓰는 교수님도 계셨고. 한번은 학과 동기한테 물었더니, ‘나도 몰라’ 그러더군요. 국사는 특히 더 어려웠어요. 그래도 학교를 1년 더 다녔으면, 장학금을 받았을 것 같아요. 하하.” 한의학을 접할 수밖에 없게 한 ‘우연’들이 결국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경제학도에서 한의사까지, 그리고 24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한국 여성과의 오랜 연애 끝에 결혼도 했고, 자녀도 둘 뒀다. 이제는 한국이 제2의 모국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한국에서 한의학이 홀대받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한의학이 임상 실험에 약하다고 공격을 받곤 하는데, 그건 같은 감기라도 환자 개인의 체질에 따라 다르게 처방하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나 이미 침은 세계 의학계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독일에서는 침이 국가건강보험 대상에 포함되고, 독일 의사 가운데 3만~5만명가량이 환자에게 침을 놓습니다. 결국 한의학이 엉터리라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거죠. 한의학은 부작용도 굉장히 적고요.”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이 부족한 국내 현실도 그는 안타깝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한의학을 배운 지 20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외국인 한의사는 나 혼자뿐”이라며 “가장 먼저 외국인이 한의학을 배울 수 있도록 문호를 넓히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침’은 중의학의 갈래라는 인식이 유럽에 팽배합니다. 반면 우리는 한약을 세계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세계적 제약회사들이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데, 한약 분야도 가능하단 뜻이죠. 품질을 규격화하고, 검증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그는 과거 한의사협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국제약침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의학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인생에 아무런 후회가 없다. 한국 생활 역시 그렇다. 정 많고 생기 넘치는 한국 사람들이 무척 좋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헬로~!”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딸내미”란다. “인터뷰 중이어서, 이제 곧 집에 들어갑니다.” 그의 신조는 치료 과정에서 의사도 환자도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얼굴이 환자를 대할 때처럼 밝아졌다. 그는 가족만큼이나 환자를 사랑하는 한의사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자생한방병원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