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등반가

'히말라야 14좌 도전' 오은선 출국 직전 인터뷰 ...

써미트 2009. 6. 29. 15:48

'히말라야 14좌 도전' 오은선 출국 직전 인터뷰

"죽고 싶을 만큼 힘든 마(魔)의 8000m 거기 서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해발 8000m는 어떤 세상일까. 해발 200m 고도(서울)에 사는 우리는 고도 8000m가 어떤 세계인지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다. 보통 사람은 생각이 마비돼 집 전화번호도 기억하기 힘들며, 손에 음식을 쥐어줘도 입에 넣기 어렵다는 마(魔)의 높이. 훈련된 산악인이라 해도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리기 힘겹고, 걸음 한 발짝을 내딛는 것조차 괴롭게 느껴진다는 극한의 상태. 온몸이 극도로 예민해져 비타민 냄새조차 역겹게 느껴지고, 물을 마셔도 곧바로 토악질을 하며, 숨쉴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는 범접할 수 없는 경계가 고도 8000m의 세계다.

▲ photo 오은선씨 제공
‘세계 첫 여성 14좌 정복’ 가능성 커

이런 고통을 참아가며 8000m의 세계에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8000m급 히말라야 14좌 중 11개봉을 등정, 여성으로선 세계 최초로 14좌 완등을 바라보고 있는 오은선(43·블랙야크·154㎝·48㎏) 대장은 지난 6월 3일 “솔직히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오른다”면서도 “좋으니까 하지, 안 좋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녀는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8125m)와 가셔브룸 1봉(8068m) 등정을 위해 6월 8일 출국했다.

이번 도전에 성공할 경우 오 대장은 8000m급 히말라야 14개 봉우리 중 13개 봉우리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게 되며 올 가을 네팔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성공할 경우엔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오른 세계 최초의 여성 산악인이 된다.

“생각이 멈춘다고 할까요. 8000m라는 데가 그래요. 사고가 정상적으로 되질 않아요. 지난달 칸첸중가(8586m)에 올랐을 때예요.(오 대장은 지난 5월 6일 ‘가장 힘든 봉우리’로 꼽히는 칸첸중가 등정에 성공했다.) 카메라 녹화를 위해 한마디 하라기에 이렇게 말했어요. ‘새벽 1시30분에 출발해서 오후 1시30분까지, 정확하게 11시간 만에 정상에 도달했습니다’라고 말이죠. 그게 이상하다는 걸 그땐 몰랐어요. 11시간이 아니라 12시간이라고 해야 했는데, 그런 계산이 되질 않는 거예요. 그것도 ‘정확하게’란 표현을 써가면서 11시간이라고 했으니, 참…. 그게 8000m예요.”

11번째 다울라기리 때 가장 힘들어… 처음 눈물

오은선 대장은 “산에 오르다 보니까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며 말을 이었다. “다울라기리(8167m)에 오를 때였어요.(오 대장은 칸첸중가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지 보름 만인 지난 5월 21일 다울라기리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정말 너무 너무 힘이 들었거든요. 그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칸첸중가는 워낙 힘들기로 유명한 곳이니까, 출발할 때부터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갔어요. 그런데 다울라기리 때는 그러질 못했어요. 높이도 칸첸중가보다 약간(419m) 낮았고, 그래서 예상 시간도 조금 짧게 잡았죠. 실제로 등반 시간이 칸첸중가보다 8시간 정도 덜 걸렸습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다울라기리 등반이 훨씬 길게 느껴지는 거예요. 힘든 것도 다울라기리가 훨씬 더 했어요. 한 걸음 딛고 산꼭대기 바라보고, 또 한 걸음 딛고 또 바라보고…. 머릿속엔 온통 ‘저길 언제 가나’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정말 그 외엔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요. 하도 힘이 들어서, 정상에 섰을 때 혼자 울었어요. 그동안 산에 많이 다녔지만 힘이 들어서 운 적은 처음이었어요.”

오 대장은 높고 험한 봉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덜 높고 덜 험한 봉우리가 더 힘들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그게 바로 마음가짐의 차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단단히 각오하고 출발한 경우와 약간 마음 편하게 먹고 출발한 경우는 다른 것 같아요. 산악인 선배들이 저한테 ‘욕심 내지 말라’고 충고해 주곤 했는데 그 의미를 이제 알 것 같아요. 저도 평소에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거든요.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해놓지 않으면 뒤로 물러나야 할 때 욕심을 부려 앞으로 나아가게 돼요. 잘못은 그럴 때 일어납니다.”

오 대장은 다울라기리의 ‘악몽’을 다시 떠올렸다. “힘들긴 무척 힘들었지만 그걸 빼고는 사실 올라갈 때 크게 무리라고 느껴지진 않았어요. 그런데 내려올 땐 안 그랬어요. 한 7500m 지점쯤 됐던 것 같은데 평평한 바위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쉬었다 가려고 그 위에 서서 물을 마셨는데 한 모금 넘기자마자 곧바로 구토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보니까 노란 위액이더라고요. 하긴 물밖에 마신 것이 없었으니…. 그래서 물도 못 먹고 그냥 내려와서 캠프에 도착했어요. 몸을 좀 쉬면서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셨죠. 그런데 또 구토가 올라오는 거예요. 그때도 노란 위액이 나왔어요. 그만큼 제 몸이 힘들었다는 거겠죠.”

물조차 마시기 힘든 극한 고통을 참으며 8000m급 고산을 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 대장은 ‘8000m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했다.

▲ 지난 5월 칸첸중가를 등반하는 오은선 대장(위)과 정상에서 환호하는 모습(아래).
숨 쉴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

“의학적으로 7500m 이상 고지에선 사람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사망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뒤낭·스의스 의사)가 있대요. 산소가 부족하니까요. 1000m 상승할 때마다 공기에 있는 산소량이 10%씩 줄어든다니까 해발 8000m급 고지대의 산소량은 평지의 20% 정도밖에 안될 거예요.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에 따라 가장 약한 부분부터 이상 신호가 나타납니다. 구토하는 사람,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 숨 쉬기가 힘들다는 사람…. 그래서 저희들끼리는 고산에 가는 것을 ‘건강검진 받으러 간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한번 올라가 보면 자기 몸 어디가 약한지를 금방 알 수 있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엔 제일 먼저 통증을 느끼는 곳이 머리예요. 두통이 무척 심해지거든요.”

오 대장은 “8000m급 고산 지대에선 공기가 엄청나게 차가운 데다 건조해서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다”고 말했다.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 고통을 이겨내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올라야 한다는 의미다.

“손가락 발가락도 엄청나게 시려요. 대도시 겨울처럼 그냥 한 20~30분 시리다가 마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수시간씩 때로는 하루 종일 손가락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시려요. 그래서 계속 쉼 없이 손·발가락을 비벼주고 움직여줘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동상에 걸리거든요. 극한 상황이라 그런지 고산 지대에선 몸도 엄청나게 예민해져요. 꽤 떨어진 곳에서도 비타민 알약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돼요. 그 냄새가 역해서 저는 비타민을 안 먹었어요.”

오 대장의 말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는 산악인 조지 말로리의 유명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삶을 산에 빗대 “왜 고통스럽게 오르려 하느냐”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져왔다. “산이 있으니 오른다”는 말로리의 대답은 이 화두에 대한 모범답안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범부에겐 이 대답이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게 느껴진다. 오 대장은 “왜 오르느냐”는 명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실 좋아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고요.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올라가겠어요. 해냈을 때 느껴지는 자부심은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좋아요.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좋습니다.”

내가 정복한 게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준 것

세계에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등정한 사람은 16명밖에 없다. 이 중 엄홍길·박영석·한왕용 세 사람이 한국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14좌를 모두 올라간 여성은 없다. 오은선 대장은 이 미답의 세계에 도전하기 위해 8일 출국했다. 그는 “산을 오르면서 한번도 정복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산이 받아들여줬기 때문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 뿐”이란 것이다.

현재 14좌 첫 완등을 놓고 오 대장과 경쟁하는 여성은 4명.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Edurne Pasaban·36),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부르너(Gerlinde Kaltenbrunner·39), 이탈리아의 니베스 메로이(Nives Meroi·48), 그리고 한국의 고미영(41)씨가 그들이다.

현재까지 12좌를 오른 칼텐부르너는 ‘무산소 등정’만을 고집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로체(8516m) 무산소 등정 때 그와 만났다”는 오 대장은 그에 대해 “산소통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올라야 한다는 개인적 철학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14좌 무산소 등정을 목표로 등반해온 칼텐부르너는 에베레스트와 K2, 두 개의 봉우리를 남겨놓고 있는데 산악인들은 “그가 산소통을 메고 자신의 철학을 깨면서까지 올해 안에 두 개의 봉우리를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을이 되면 날씨가 너무 추워져 등반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올해 안엔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스페인의 파사반도 현재까지 12좌에 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 때 입은 동상 치료가 끝나지 않아 쉽게 도전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11좌를 오른 또 다른 경쟁자 메로이는 칸첸중가 도전에 실패했다. 지금까지 9개 봉우리에 오른 한국인 경쟁자 고미영에겐 5개의 봉우리가 더 남아 있다. 따라서 현재로선 오은선 대장이 ‘14좌 등정 첫 여성 산악인’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녀는 1997년 가셔브룸 2봉(8035m)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뒤 2004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를 단독으로 올랐고, 2006년 시샤팡마(8027m) 무산소, 2007년 초오유(8201m) 무산소·단독, K2(8611m) 한국 여성 최초, 2008년 마칼루(8463m) 무산소, 로체(8516m) 무산소·단독, 브로드피크(8047m) 무산소·단독, 마나슬루(8163m) 무산소, 2009년 칸첸중가(8586m) 무산소, 다울라기리(8167m)봉을 무산소로 등정해 총 11개 봉우리의 정상에 올랐다.

공무원·학습지 교사… 산 때문에 다 그만둬

수원대 산악부 출신으로 서울시 교육청 공무원(8급) 생활을 하던 그는 지난 1993년 직장을 그만두고 에베레스트 원정길에 올랐다. “3개월 장기 휴가를 냈더니 받아주지 않더라”는 것이 이유였다. 오 대장은 “그 당시엔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며 “등반 대장이 ‘곧바로 내려오라’고 해서 하산, 솔직히 도전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때의 아쉬움 때문에 계속 산을 탔는지도 몰라요. 무전기에 대고 ‘빨리 내려오라’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잘됐다 싶습니다. 만약 그때 갈증이 채워졌더라면 그걸로 만족해 산을 찾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지금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죠.”

산에서 돌아온 오 대장은 학습지 교사로 변신했다. “주5일 근무라 주말엔 산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 직업 선택의 사유였다. 하지만 학습지 교사도 오래 하진 못했다. “히말라야에 가기 위해 장기 휴가를 청하자 ‘회사와 산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답은 명백했다. ‘산’은 한번도 그녀의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혼인 그녀에게 ‘산이냐 남자냐’란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1966년생, 만 43세인 오 대장은 “아직까지 산만큼 나를 매료시킨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만약 내게도 반려자가 있다면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14좌에 모두 오를 때까진 결혼 생각은 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오은선 대장은 ‘블랙야크’로 유명한 ㈜동진레저의 이사를 맡고 있다. 이 회사의 강태선 사장은 서울시 산악연맹 회장 출신으로 히말라야 7회 도전 경력을 갖고 있는 기업인이자 산악인으로 엄홍길 대장의 후원을 맡기도 했다. 오 대장은 “좋은 조건의 연봉은 물론, 원정에 필요한 경비까지 후원해준 동진레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 이범진 기자 bomb@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