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이야기

“이라크파병 반대 표명에 훗날 고마워해”

써미트 2009. 5. 27. 11:06

“이라크파병 반대 표명에 훗날 고마워해”

한겨레 | 입력 2009.05.27 08:20                                                                                 

[한겨레] 사시 동기·민변 회원들이 본 노무현


"솔직하고 타협없는 스타일…허리띠 풀어 뱀장수 흉내도"


"정치 말렸는데 고집 못 꺾어…대통령된 뒤 짓눌리고 경직"

노무현 전 대통령은 판사와 변호사를 지낸 법조인이기도 했다. 그를 아는 법조계 인사들은 법조인 시절 노 전 대통령이 "정치인일 때보다 더 아웃사이더에 가까웠다"고 회고했다. 1년을 못 채운 짧은 판사 생활에 이어 부산의 '운동권 변호사'로 변신한 탓에 법조계 인맥은 넓지 않았다.

법조계에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1975년의 사법시험 17회 동기생들과, 한때 자신이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원들이다.

노 전 대통령은 '8인회'라고 이름 붙여진 동기생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자전 에세이 < 여보 나 좀 도와줘 > (1994)에는 이렇게 썼다. "연수원 초기 아는 사람이 없어 점심도 혼자 먹어야 했는데, 내가 외톨이란 걸 눈치챈 몇몇이 자기 패거리에 끼워줬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연수원 시절 내내 가깝게 지냈고, 지금도 만난다."

법무법인 화우의 대표인 강보현 변호사와 이종왕 전 삼성그룹 법무실장, 정상명 전 검찰총장, 이종백 전 서울고검장, 조대현·김종대 헌법재판관, 서상홍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등이 그와 특별히 가까웠던 동기생들이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와 퇴임 직전 이들을 청와대로 불러 저녁을 내고, 거나한 술자리도 마련했다. 퇴임 뒤에는 봉하마을에 초청도 했다. 이들 중 한 동기생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우리랑 함께 부엉이바위에 올랐을 땐 이런 비극이 벌어지리라 상상도 못했는데 …"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이어 "그때 정치하겠다는 걸 말렸어야 했다"며, 1988년 정계 입문 당시를 떠올렸다.

"출마한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뜯어말리러 부산까지 내려갔었지. 당시 노 변호사가 집 한 채를 마련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내가 형수(권양숙씨)를 만나 '조금 있으면 분명히 이 집도 팔아먹자고 할 겁니다'라며 겁을 줬고, 형수도 반대를 많이 했는데 결국 그 고집을 못 꺾겠더라고 …."

검찰 출신의 한 동기생은 연수원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판사 출신인 연수원 교수들이 수업하다가 '어이, 상고 출신 노무현이 대답해봐' '나이 많은 노무현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식으로 짓궂은 질문을 많이 했다. 시보를 나가서도 '(상고 출신이라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냐, 너 뭘 배웠냐' 식의 구박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 지나치게 경직된 법조계의 분위기를 못 견뎌 했고, 그래서 판사도 짧게 하고 말았다."

그의 운명은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뒤바뀌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운동권 출신인 문재인 변호사와 같은 사무실을 쓰게 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 변호사는 "당시 함께 사무실을 쓰려 했던 사람이 판사에 임용돼 가버리자, 노 변호사가 나한테 찾아와 같이 일해보자고 제의를 했다"며 "나는 다음해 좋은 조건으로 서울로 가려던 참이었는데, 그의 솔직하고 타협 없는 업무 스타일에 반해 눌러앉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부림사건'으로 '운동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5월28일 창립한 민변 회원들과도 교류를 맺게 된다. 당시 부산 민변의 핵심은 문재인 변호사였다.

조용환 변호사는 민변 창립총회에 참석했던 노 전 대통령을 이렇게 기억했다. "직전 총선에서 민변 출신 중 강신옥, 김광일, 노무현 세 사람이 국회의원에 당선돼 참석을 했는데, 노 변호사가 인사말을 하며 '그 선거라는 게 사람을 참 미치게 만들더군요. 표만 준다면 지나가는 개한테 절이라도 하겠더라고요'라고 말해, 모두 웃었다."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을 지낸 박주현 변호사도 "술자리 같은 데서 허리띠 풀어 머리에 묶고 약장수, 뱀장수 흉내를 내가며 굉장히 흥을 잘 돋우는 분이었다"며 "대통령이 된 뒤에도 몇 차례 그런 장면이 있었지만 예전에 비해 항상 짓눌려 있고, 경직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민변 원로인 한승헌 변호사는 1987년 가을, 옥포 대우조선소 노동자 이석규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구속됐던 노 변호사의 모습을 또렷이 떠올렸다. "구속됐다는 말을 듣고 부산 해운대경찰서 유치장에 가서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노 변호사를 접견했지. 노 변호사가 거제도에서 있었던 일을 자필로 경위서를 썼는데, 기록이 얼마나 자세하고 꼼꼼하던지 마치 생방송 보듯이 써놨더라고. 표정은 담담했지만 기질은 강직했고."

한 변호사는 탄핵재판 때의 기억도 되살렸다. "대통령과 변호인단이 청와대에서 저녁을 먹으며 대책을 상의했는데, 당시 한나라당 쪽과 보수언론에서 대통령이 헌재 심판정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어. 노 대통령이 '나가죠. 못 나갈 것 뭐 있냐'고 공세적으로 나오더라고. 변호인단이 만류했지. 문재인 변호사가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변호인단한테 할 말이 있냐'고 했어.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 '저 대통령 다시 하게 좀 해주십시오'라며 허리 굽혀 인사를 해. 감성적인 그런 표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아."

박주현 변호사도 노 전 대통령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단면을 전했다. "제가 이라크 파병을 강하게 반대했는데, 그때 언론에서 청와대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다고 시끄러웠거든요. 그런데 파병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저한테 나중에 고맙다고 격려금까지 주셨어요. 상황에 밀려 파병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준 제게 고마우셨던 거죠."

석진환 송경화 기자 soulfat@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 한겨레신문 구독 | 한겨레21 구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