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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치유의 의학적 의의와 전망

써미트 2010. 2. 4. 12:04

        산림치유의 의학적 의의와 전망

 

글·사진 / 우종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스트레스연구소 소장)

 

‘뱀눈으로 숲 보기’ - 거울을 이용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숲을 체험한다.
숲 체험을 통한 산림치유

옛날 왕들은 몸이 많이 아플 때 공기 좋은 숲 속으로 요양을 떠났다. 그곳에서 모든 것을 잊고 자연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궁궐로 복귀하곤 했다. 왕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도 몸과 마음이 병들어지쳐 있을 때는 숲에서 요양을 하며 기운을 차렸다.
숲에서 병을 치유한 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수히 많다. 지금이야 결핵이 대수롭지 않은 병이지만, 이렇다 할 치료약이 없던 시절의 결핵 환자들은 마지막 도피처로 숲을 찾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숲에서 불치병이라 여기던 결핵을 이기고 돌아온 환자가 많았다.
정말 숲이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단순히 경치 좋고 공기가 좋아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신체의 생리적 기능을 활성화해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이미 의학적으로도 입증된 상태다.
최근 휴양림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배경에는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자연과 접촉하는 공간이 계속 줄어들고 각박한 현대인이 스트레스를 받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휴양은 숲에서 단순히 휴식하는 정도의 활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숲이 인간의 건강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연구들이 진행되면서 숲에서의 휴양 활동은 ‘산림치유’라는 적극적 의미의 휴양 활동으로 전환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몇 년간 산림치유의 의학적 효능을 밝히고 활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해왔다. 그런데 산림 환경의 생리적.정신적 안정 효과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예전에는 산림치유란 말을 들어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그런 건 TV에서 보았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자세히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일간지나 TV 등 언론 매체에서도 심심치 않게 다루고 있다.
지난해 4월 강원도 횡성군 ‘숲체원’에서 보건복지부 직원 45명을 대상으로 ‘직장인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숲 체험 캠프’를 진행했을 때 조선일보 취재진도 동행했다. 1박 2일간 필자의 특강과 오감을 자극하는 맨발 걷기, 명상, 나무 껴안기 등 숲 속 활동을 함께 했다. 그리고 참가자 중 4명을 선정해 산림치유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해보았다. 뇌파 검사, 스트레스 호르몬 검사, 자율신경기능 검사와 혈압을 측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도 모두 감소했고, 명상할 때 증가하는 알파파도 증가했다. 4명 모두 자율신경 기능도 안정되었고 혈압도 떨어졌다. 원래 4명 모두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들이었기에 프로그램 참가 전후 수치가 모두 정상 범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긍정적인 수치가 나타난 것은 상당히 놀라웠고, 취재한 기자도 산림치유의 효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크게 기사화한 적이 있다.
숲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특히 복잡한 마음을 달래주고, 스트레스를 없애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데 좋다. 따라서 기분이 우울할 때 숲을 자주 찾는 것만으로도 우울함을 덜 수 있다.
필자는 산림청에서 발주한 ‘숲을 이용한 건강.치유프로그램 개발’이라는 기획 과제에서 질병별.대상별 프로그램의 개발을 맡아 우울증.고혈압.아토피의 3가지 질환에 대해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효과를 평가하고 있다.
우울증은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보다 숲에서 치료받을 때 스트레스호르몬 수치가 더 잘 떨어진다. 피톤치드의 신경계 진정작용이 스트레스호르몬 수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우울증이 어느 정도 호전되었을 때 우울증을 적극적으로 없애거나 우울증이 심해지거나 재발하는 것을 막는 데 효과가 좋은것으로 나타났다.
숲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지만 이왕이면 적극적으로 숲의 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숲에 빠져들수록 우울증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효과도 커지니 말이다. 산림치유 프로그램 중 혼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에 ‘뱀눈으로 숲 보기’가 있다.
뱀눈은 몸뚱어리 밑을 보지 못하고 위만 볼 수 있다. 뱀눈이 이렇게 생긴데는 이유가 있다. 늘 바닥에 배를 대고 기어 다녀야 하는 신세인데, 눈이 땅을 향해 있으면 자신을 노리는 적들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니 눈이 땅이 아닌 위를 향해야 적을 빨리 발견하고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사람은 뱀과 달리 아래를 더 잘 본다. 물론 고개를 들어 위를 볼 수도 있지만 평소에는 눈 아래 세상을 주로 쳐다보며 산다. 이렇게 세상을 향한 시선이 다르니 당연히 보는 세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뱀눈으로 숲 보기’는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거울만 있으면 된다. 거울을 눈 아래에 두면 아래나 앞을 보기 힘들고 뱀처럼 위만 쳐다보게 된다. 뱀눈으로 숲을 보면 평소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의 끝이 보이고, 하늘을 가리고 있는 수많은 나뭇잎도 보이고, 그 틈으로 예쁜 하늘이 고개를 내민 모습도 보인다.
뱀눈으로 숲을 보면 어떤 각도에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처음 그러한 모습을 본 듯 놀라워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사실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모습이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 생각을 바꾸고, 다른 사람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는 최근 몇 십 년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고도의 산업국가로 부상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87%를 넘어 우리 국민의 대부분이 도시 환경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누려온 산림과의 조화로운 교류가 단절되게 했으며, 테크노스트레스에 극심히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산림치유는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현재 산림치유는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으며 앞으로 이의 임상적 활용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러나 사회적 수요와 실용화를 위해서는 아직도 산림치유에 관한 체계적인 사례의 분석, 과학적 기작에 대한 연구 등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산림치유에 대한 과학적 또는 증거 중심의 연구 결과는 산림의 새로운 가치창출과 이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산림을 이용한 치유 단지 조성에서의 시설 및 프로그램 개발의 정보를 제공하며, 산림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대국민 홍보 및 국민에게 ‘삶의 질’ 제고 기회를 제공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산림치유는 삶의 질 향상과 의료비 지출 절감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출처 ː 산림지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