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채 한 손 내민 그때 사진 참 눈물 납니다”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4년 서독 에르하르트 총리에게 차관을 요청하는 사진’을 배경으로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
“이 사진, 참 눈물 나는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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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원장은 박 대통령의 16일간 서독 방문 당시 전담 통역사 겸 경제 고문 자격으로 수행했다. 그는 58년 뉘른베르크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흔치 않은 ‘서독 유학파’였다. 귀국해 중앙대 교수를 하다 발탁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참여했다.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으로만 15년을 지냈다. 그는 “15년 중 서독 방문 때 박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크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박 대통령의 서독행은 ‘돈’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고 싶은데 민족자본이 형성돼 있지 않아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없었다. 따라서 ‘라인강의 기적’을 만든 독일 등 외국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를 만난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들이 서독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다”며 “군인은 거짓말을 안 하니 나를 믿고 돈 좀 빌려달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실상 박 대통령이 서독에서 일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들을 담보로 돈을 빌린 모양새였다.
백 원장은 “박 대통령이 서독에서 고생하는 광부와 간호사들을 보고 괴로워했다”고 기억했다. 서독 방문 이틀째 되던 날 박 대통령은 1000m 지하 갱도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광부들은 새까만 얼굴로 대통령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백 원장은 “대통령이 그 모습을 보고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가다 결국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여러분의 검은 얼굴을 보니 내 눈에서 피눈물이 흐른다. 열심히 해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며 연설을 끝마쳤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서독 방문 기간 내내 쉬지 않았다고 한다.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직접 달려보며 도로 구조 등을 주의 깊게 봤고, 공장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박 대통령은 백 원장에게 “우리라고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지 못하란 법이 없다”고 수시로 말했다고 한다.
백 원장은 유신정권 아래서 9, 10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으로 분류됐고 안보 위협도 받던 때였다”며 “민주주의는 당연히 중요한 가치지만 그것만을 위해 정치를 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백 원장은 박 대통령의 단점으로 ‘남과 타협하지 않는 것’을 꼽았다. 그래서일까. 백 원장은 “박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을 향한 가장 날선 비판에 ‘소극적 인정’을 한 셈이다.
김효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